2020/11/25 ‒ 2020/12/19
Student Patterns
이수경
이수경은 이번 전시 《Student Patterns》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복과 관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복이 자신의 기억과 동시대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사용되는지 살펴보았다. 이때 작가가 주목한 것은 사회에서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여러 트렌드에 걸쳐 소비되는 교복의 양상이다. 우선 교복에 얽힌 작가의 개인적 경험은 전시에서 만화로 가공된다. 만화에서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주인공의 사소한 일상, 연애, 부모와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다뤄지는데, 그중 일부가 전시장 벽면에 들어온다. 전시에서는 특히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사회 옷(uniform)’을 입는 것과 관련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교복을 입어봤을 때 느낀 생경함에 대한 기록, 일정한 기준에 맞는 사이즈로 대량 생산된 교복과는 다르게 핏(fit)한 교복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해서 자신의 것과 비교해 보고, 교복 검사를 피해 친구와 옷을 바꿔 입거나, 수선집을 찾아갔는데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변형할 것인지 묻는 구체적인 상황 등이 사각 칸을 채운다.

전시장 벽에 만화나 드로잉이 걸려 있다면, 공간에는 옷이나 가구 등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놓여 있다. 조각 표면에서 느껴지는 낡음 때문에 작가가 주로 중고 옷과 가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입은 옷에는 물리적인 ‘사용감’이 남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이를 ‘얼룩이 졌다’라거나 ‘때가 탔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시간의 누적 혹은 부분의 흔적이 달라붙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각에 사용된 중고 교복과 가구에 묻은 더러운 자국이나 해지고 닳은 모습을 통해 조각이 매개하고 있는 작가와 관객 사이에 알 수 없는 이전 소유자의 투명한 신체(ghost)가 소환된다. 사용자의 시간이 동시에 운반되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단순히 교복이라는 소재만 추출하여 조각의 재료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복을 입는 대상(학생)의 시간까지 함께 가져오고 있다. 예컨대 교복 입은 학생의 룩(look)을 떼어내어 재조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조합이 《Student Patterns》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살펴보기에 앞서, 이전에 선보였던 작품들의 구성 방식을 떠올려보자. 《F/W 16》(케이크 갤러리, 2016)이나 〈Winter Proof〉(《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No Longer Object》, 북서울시립미술관, 2016) 시리즈의 조각은 작품의 주제가 되는 대상이 입었을 만한 옷의 특성(기능성 소재, 페이크 퍼, 패딩 원단 등)을 발췌하여 동물 혹은 인체의 일부와 같이 어떤 형태적 유사성을 갖거나 특정한 자세를 직관적으로 구현하였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에 더해 옷의 패턴(pattern)을 의식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패턴은 평면으로 이루어진 천을 특정한 도형으로 재단할 때 사용하는 가이드를 지칭하며, 보통 단단한 종이로 만들거나 동일한 형태를 디지털 프로그램에서 벡터 라인으로 그려서 사용한다. 어떤 양식으로 만들던지 패턴은 천을 잘라내기 위한 도면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교복과 같은 기성복은 메인이 되는 패턴을 등차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스케일을 분화시키는 그레이딩(grading) 과정을 거친다. 산업적 측면에서 인간의 다양한 신체를 몇 가지의 치수로 나누어 소비자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스몰—미디엄—라지와 같은 패턴에 불과하며, 그 이외의 니즈를 반영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어떤 학생들은 그레이딩 된 패턴에 또 한 번 변형을 가한다. 이중의 변형을 추동하는 동기는 기성복이 불편해서 자신에게 최적화된 핏을 찾아간다기보다는 단일한 패턴이 복제된 교복들 사이에서 자신을 구분짓는 동시에 유행에 따라가고 싶은 심리적 요인에 있다. 무작정 찾아간 수선집에서 이미 만들어진 교복에 시침 핀을 끼워 형태를 조정하는 행위는 분화된 패턴을 다시 조정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이수경은 패턴의 특성을 교복(옷)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메시(mesh) 주머니가 여기저기 달린 가방, 인체공학적 곡선이 들어간 의자, 책상과 서랍이 혼합된 가구 등, 학생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환경으로 확장한다. 학생이 입는 옷과 사용하는 가구들은 일상에서 학생의 본분으로 여겨지는 성실함, 단정함 등과 같은 요소를 반영하여 학생의 패턴을 상상하고, 이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세하게 조절되는 헤드레스트와 팔걸이, 라운드형 등받이, 우레탄 바퀴 등은 ‘학생 의자’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천과 소재를 달리하며 또 다른 유형 (pattern)을 만든다. 패턴을 유형 만들기의 일종으로 본다면,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조각들은 ‘학생’이라는 정체성의 몸체를 중심으로 주변 환경들의 패턴을 추출하고, 이 패턴들 사이의 관계를 재배치하여 사회에서 학생의 패턴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미와 맥락을 증폭시킨다. 가령 가방 안쪽 등판이 분리된 자리에 체육복 바지가 붙고, 절개된 가방의 아랫단에는 아코디언 주름을 한 교복 치마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클래식이자 트렌드로서 스쿨룩이 가지는 기이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작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때로는 작품이 신라나 고려 등 과거 의복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했었다. 재료에 얼룩을 남긴 사람은 사라졌지만, 시간은 흔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교복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학교를 벗어난 이후에도 은행원 유니폼, 프레피룩, 코스프레 의상, 아이돌 의상 등과 같이 교복은 비슷한 패턴으로 제작되어 존재하며, 전혀 다른 트렌드로 소비된다. 패턴의 차원에서 이것들은 하나의 학생 집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교복을 발굴한다면, 여기에 담긴 시간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것으로 상상될 것이다. 2020년 동아시아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니트 베스트와 반바지, 미니스커트, 맞주름 스커트 등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한국은 변화하는 세계정세와 기후 위기 속에서 세계를 따라잡거나 선두에 위치하기 위해 어떤 것이 모범적 학생의 자세인지 자문하고 있다. 이수경은 그 안에서 영원히 학생처럼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Student Patterns》는 우리가 학생이라는 빈 템플릿에 미리 설정된 도구들을 가지고 어떤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드러내고, 박물관에 방문한 것처럼 그들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 의복을 입고 어떻게 살아갔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기획: ONEROOM(송하영, 최조훈)
포스터 디자인: 강문식

사진: 김익현 / 제공: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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